왜 너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말들은 꼭 너같니
순할 순, 영화로울 영
너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말마저 꼭 너 같잖니.
새빨간 립스틱보다
W. 몬트
사랑을 모르는 내가 사랑에 대해 논하는 것이 우숩지만 사람들에게는 사랑하는 것이 있다. 저마다의 사람들에게는 그것들을 떠올리며 잠들지 못하는 밤이 있고, 문득 밤하늘을 올려보다 별이 쏟아질 것만 같은 밤하늘이 있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괜히 웃음이 나오는 날이 있다. 내 경우에는 네가 그랬다. 너를 떠올릴 때면 잠들지 못한 밤이 많았고 너를 만나는 날이면 종일을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네가 갈 곳이 뻔하다는 걸 깨달아도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고 무엇을 했는지 궁금했다. 한 번은 네게 이 감정이 뭔지 물었더니 너는 그것을 사랑이라 불렀다.
"이게 사랑이니?"
내 물음에 너는 내 손등을 저의 무릎으로 가져갔다. 가방에서 네임펜을 꺼내는 동안 너의 무릎을 쓰다듬자 네가 푸스스 웃음을 터트렸다. 이로 뚜껑을 벗겨낸 너는 내 손등에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손으로 가려가며 적은 문장. 손틈 사이로 얼핏 보이는 네 글자. 너는 만족을 한 듯 환하게 웃고는 네임펜을 내게 건넸다. 손 끝이 너에게 가 있었기에 그 문장을 보려면 고개를 돌려야했다. 사랑해요, 네임펜으로 눌러 적은 문장. 사랑이라는 단어를 내내 곱씹었다.
"사랑은 말이죠, "
나는 네가 이야기를 내뱉을 때면 위로 찢어진 눈이 접히는 것을 좋아했다. 나즈막하게 속삭이는 말투를 좋아했다. 가끔씩 귀엽게 솟아오르는 볼을 좋아했다. 너는 내 손에 걸려진 네임펜을 고쳐주며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이 해준게 좋고 간직하고 싶은 걸 말해요."
너는 내 손을 움켜쥐고 아까와 같이 문장을 써내려갔다. 저보다 큰 손을 움직이려는 탓에 너는 몇 번이나 애를 썼다. 이번에는 너의 손에 써지는 문장. 문득 맞잡은 손이 차가워 그 손을 움켜쥐었다.
"손 차갑네"
"이제 가을이니까요"
"아가, 앞으로 안에서 만날래?"
"난 여기가 좋아요. 아저씨랑 처음 만난 곳이잖아요."
"그래도"
"아, 다 됐다."
너의 말에 네 손등에 적힌 문장을 바라보았다. 둘이 손을 움켜쥐고 썼던 탓인지 처음보다 삐뚤삐뚤했다. 사랑해, 그 예쁘게 써지지 않은 말을 너는 뭐가 그렇게나 소중한지 한참을 들여보다 이내 웃음을 지었다. 영하의 날씨 때문인지 네가 웃음을 내뱉을 때마다 입사이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지워지니까. 손 씻지 마요. 나도 이제 손 안 씻을거에요"
네 손을 마주잡자 아까는 몰랐는데 사랑해요, 밑에 그려진 실선이 길게 이어져 사랑해 밑으로 기어들어간게 보였다. 그것을 빤히 쳐다보자 너의 귀가 붉게 물들었다. 추위 때문인지 부끄러워 그러는 것인지. 너의 귀를 매만지고는 작게 입을 맞추자 너는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몇시간 동안 줄곧 불편하게 앉은 탓인지 너는 얼굴을 찌푸리고는 다리를 절뚝였다. 이, 이 제 갈거,에요. 당황한 듯 말을 더듬는 너의 귀는 아까보다 더 붉게 물들어 있었다. 나 진짜 갈거에요. 또 봐요. 아저씨. 네가 손을 흔들자 내가 그려주었던 ㅡ 사실을 네가 그려준 것이지만ㅡ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을 보이며 흔드는 대신 손등을 보이며 손을 흔들자 너는 가만히 서 있다 손등을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네가 간 후 다시 편의점 앞에 앉았다. 허벅지의 닿는 이물감에 주머니를 뒤지자 담배갑 하나가 손에 잡혔다. 에펠탑이 그려진 담배갑을 열자 담배 한 개비가 남아있었다. 그 담배를 다시 주머니에 놓고는 다른 담배를 꺼냈다. 라이터를 키려다 손등에 네임펜으로 그려진 단어가 보였다. 사랑해요. 라이터를 키자 작은 불꽃이 일렁였다. 사랑해요. 손가락을 떼자 작은 불꽃은 금새 사라지고 작은 연기가 새어나왔다.
종종 네가 뱉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사랑해요, 좋아해요, 그런 다정한 말들. 사, 를 내뱉다 숨을 들이키고는 영영 내뱉지 못하였다. 내 인생에 써내려가기 어색하기만 한 단어인데. 사랑보다는 증오를 써내려갔던 나날인데 어느샌가 네가 나타나 나를 잔뜩 뒤섞고 다시 사라졌다. 평소같으면 신경도 쓰지 않을 작은 아이인데. 모래를 휘젓다 사라지는 파도처럼 그렇게 왔다 갈 줄 알았으나 너는 영영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너의 당돌함을 사랑했다. 좋아한다고 흘러가듯 말하는 것도, 교복을 입어놓고 담배를 사러 가는 것도, 그것 모두 나 때문에 그랬다고 말하는 것도.
순영아, 너의 이름을 부르려다 네 이름에 묻은 아름다움에 너의 이름을 내뱉지 못했다. 순영아,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네 얼굴을 보면 차마 그 이름을 내뱉을 수 없었다. 네 이름을 뱉을 때면 꼭 네가 내 전부가 된 것 같아서. 너에게 헤어나오질 못할 것 같아서. 왜 너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말들은 꼭 너같니. 순할 순, 영화로울 영. 너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말마저 꼭 너 같잖니. 나와 다르게 너는 어렸고 순수했다.
*
너를 처음 본 것은 편의점이었다. 담배 하나 사러 들어간 편의점이었는데 그 곳에서 너를 만날 줄 몰랐다. 계산대에는 립밤이 놓여있었고 너는 알바생 뒤 쪽에 놓여있는 담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바생은 립밤의 바코드를 찍고는 네가 돈을 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손을 들어 알바생 뒤 쪽에 있는 담배들을 가리켰다. 담배 하나 주세요. 알바생의 시선이 네 교복에 맺힌다. 동복을 입을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와이셔츠만을 입은 네가 참 이상하다 생각했다. 제멋대로 묶인 넥타이가 목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미성년자에게 판매가 금지된 상품입니다. 알바생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고 너는 알바생의 말에 지지않고 다시 담배를 달라 말했다. 제발이라는 네 말에도 알바생은 끝내 네게 담배를 주지 않았다. 네 것들을 계산대 구석으로 밀어넣고는 다음 손님을 받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방관자가 된 채 일말의 행위를 지켜보았다. 너가 입술을 깨물자 건조한 입술이 벌어져 피가 새어 나왔다. 잔돈을 받지 않은 채 나가버리는 너. 알바생은 뒤에 서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어서오세요. 알바는 아까의 신경전 때문인지 무척 귀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거 주세요"
"네?"
"아까 저 학생이 사려던 담배요"
알바생은 뭔가를 말하려다 이내 담배를 꺼네주었다. 에펠탑이 그려진 담배갑. 레종 프렌치 블랙이라고 휘갈겨 써진 담배를 움켜쥐었다. 네가 갔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지만 얼마 안가 너를 찾아내었다. 너는 편의점 구석에 주저앉아 사람들이 버리고 간 장대를 줍고 있었다. 가을 바람에 너의 손끝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너는 오른손에 장대를 들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왼손을 꺼냈다. 너의 손에 들린 라이터. 노란색 몸통에 검은색으로 써진 해피모텔. 그런 이름. 너는 라이터 불로 손을 녹이고 있었다. 일렁이는 불을 바라보는 너. 네가 막 담배를 물려던 참에 담배를 건냈다. 지금 내 행동을 다른 이가 본다면 분명 비웃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게 뻗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라이터를 보고 있던 시선과 마주친다. 갈색의 눈동자. 눈꼬리가 위로 올라간 눈. 내가 널 뭐라고 불러야하나. 할 말은 있는데 뭐라 불러야 할 지 모르겠어 쉽게 말을 건네지 못했다.
"아가, 이렇게 약한거 피면서 저건 어떻게 필려고"
ㅡ
디케이 X 순영 느낌으로 썼어요
쓰다보니 길어졌는데 길어진 곳까지 쓰면 너무 늦게 낼것 같아서 이렇게 상편올립니다....ㅜㅜㅠㅠㅠㅠㅠㅠㅠㅠ 상하로 잘라서 죄송합니다 ㅡ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