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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중단편

술래잡기 上

 

 

 

 

 

우리들은 미친 게 틀림없다

 

앞뒤 안가리고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그게 불인지 모르고,

그게 사랑인지 모르고,

 

 

 

 

술래잡기

 

W. 몬트

 

 

 

 

 

칼로 써내려간 내 이름에는 먼지가 잔뜩 껴있었다. 어렸을 때 받은 명찰에 먼지가 내려 붙은 것처럼 울퉁불퉁 한 틈 사이에 먼지가 쌓여있었다. 나는 그 먼지들을 털어내려 소매를 끄집어내리고 입김을 불어보지만 짙은 잿빛의 먼지는 내 이름에 녹진하게 달라붙었다. 호시. 비가 내릴 듯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흐릿한 별빛마저 집어삼킨다. 호시.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이름이, 보스가 준 내 이름이 추악하다. 호시, 그 두 글자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별이라는 이름은 지금의 나에게 과분한 이름이었다. 호시라는 이름은 빛이 나는 사람에게, 동요 속에 나오는 작은 별처럼 은은한 사람에게, 어두운 밤하늘을 비추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래. 의뢰를 맡기러 온 늙은 노부부의 여자아이처럼. 여자아이의 눈망울은 별같이 빛이 났다. 그 애에게 내 이름을 건네주고 싶었다. 꼬깃하게 접힌 내 이름. 수십 번을 건네줄까 말까 고민을 했다. 이 이름을 주면 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나. 내 이름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기에 이런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여자애는 영영 가버렸다. 별이 된 여자아이. 아직도 하얗게 바르작 거리는 어린 숨을 기억한다. 내가 바란 건 이게 아니었는데. 나는, 비참하고, 무능력하며, 바르작거리며 살아대고 있다. 지금의 나는, 보스의 밑에 깔린 채 신음을 내는 나는, 이빨을 잃어버린 사냥개에 불과하다. 떨어지는 별처럼 나는 맹렬히 추락하고 있었다. 예전에 나는 내가 별인 줄로만 알았는데 나는 추락하는 별똥별이었다. 점차 타들어 가는 나.

 

 

 

 

 

아, 숨이 막혀왔다.

 

 

 

 

 

 

나에게는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그 한 가지 단점이 치명적이라는 게 문제지만. 나는 사람을 쏘지 못한다.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사실일지도 모르나 내 직업에는 크나큰 독이었다. 첫째. 나는 살인청부업자였고, 둘째, 사람을 쏘지 못하는 살인청부업자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때때로 총구를 내 머리통에 들이밀었다. 총알 대 여섯 발을 준비하고 탄창에 그 총알들을 욱여넣고 총구를 내 머리통에다 들이밀었다. 이제 방아쇠만 당기면 끝이었다. 그러나 살인을 못 한다는 그 빌어먹을 사실에 그조차 쉽지 않았다. 잘게 떨리는 내 손을 잘라내고 싶었다. 총을 저 멀리 던져버린다. 벽을 맞고 총이 내게 다시 돌아온다. 나는 울고야 말았다.

 

 

 

 

 

내게도 보스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을 구타하고 욕을 내뱉고 살려달라는 사람들에게 엿을 날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들은 다 과거의 영화였다. 지금의 내 인생을 비유하자면 나는 내 목에 밧줄을 건 상태였고, 마악 발을 구르려던 참이었다. 밧줄이 걸린 곳은 하늘이었고 발을 구르던 곳은 옥상의 난간이었다. 권태로운 삶이다. 모든 게 다 무기력한 삶. 의뢰를 받으면 총질을 해대는 게 전부인 삶. 숨을 헐떡거리는 사람에게서 끝내 돌아서고 마는 병신같은 나. 보스의 좆을 빨며 하루를 연명하는 역겨운 나. 누가 내 삶에 사형선고라도 한 듯 어느 것도 흥미가 없었다. 죽고 싶다. 간절하게 비는 소망은 죽음이었다. 내 삶이 정체 된 느낌이다. 내 주변으로 흐르는 것은 모두 바쁘게 흘러만 가는데 나는 멈춰있다. 내 삶이 자동차를 타고 흘러가는 것만 같다. 나는 바깥에 사는 풍경. 멈춰있지만 차에 타고 있는 삶이 보기에는 나는 흘러간다. 아니 흘러가야만 했다. 나는 살아있으니까. 아니 나는 살아있지만 죽어있다. 사람답게 살지 못하니 죽어있는 것이라. 해야 할게 많지만 하기는 싫었다. 예전에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그것을 다시 꺼내 들여보니 하기 싫었다. 이것은 권태였다. 예전에 책에서인가 영화에서인가 보았던 단어였다. 권태. 그 단어를 내내 곱씹었다. 권태는 녹진하게 몸을 녹여 내 삶에 달라붙고야 말았다. 권태가 먼지와 진득하게 얽힌다. 권태는 금방 사라질 줄 알았으나 영영이었다. 권태가 코앞에 닥쳐서야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 많은 것을 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았다. 그것은 잠깐이었다. 다시 권태가 휘몰아쳤다. 나는 권태를 이겨내지 못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고 그런 날이 반복을 하는 주였다. 나는, 아침에, 밥을, 우겨, 넣으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 종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느즈막하게 일어나 밥을 먹고 보스의 좆을 빨고 몸을 씻고 밥을 먹는다. 아직 반이나 남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빌어먹을 낙관주의자임이 틀림없다. 물이 반이나 남았다는 낙관주의자처럼이 내 삶은 반이나 남았다. 나는 남은 내 삶을 쏟아버리고 싶었다.

 

 

 

 

 

 

남자를 처음 만난 것도 그쯤이었다. 보스는 사람들에게 섹스하는 것을 보여주고는 하였다. 어떤 날에는 밖이 훤히 보이는 창문에 나를 밀어 넣고는 추삽질을 했었고 의뢰인이 보는 앞에서 그의 좆을 빨도록 시키고는 했다. 동료들은 보스의 숫캐로 전락한 나를 보며 비웃고는 했다. 어떤 날은 전화를 받던 여자였고, 어떤 날은 건물을 청소하던 늙은 노인이었으며, 어떤 날은 보스의 비서였기도 했다. 오늘은 젊은 남자였다. 소년과 청년 경계 위에 선 남자. 짙게 깔린 눈이 보였고 주먹을 쥔 손이 보였다. 보스는 남자에게 신음을 흘리는 나를 보라 명했다. 남자는 허리를 숙이고는 나와 시선을 마주하였다. 내뿜은 담배연기로 멀겋게 보이는 남자. 남자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을 잡았다.

 

 

 

 

탐미적인 악마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와 시선을 마주치자 나는 죄를 짓는 느낌에 몸을 떨었다. 

 

 

 

조악한 악마는 내게 권태를 앗아갔고,

내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주었다

 

 

 

* * *

 

 

 

 

"호시야"

 

 

 

 

그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그와 동시에 나는 욕을 내뱉었고 그는 정액을 내뱉었다. 입안에 가득 찬 정액을 침대 위로 뱉어낸다. 보스가 내 입에서 좆을 빼낸다. 그는 껄덕이는 좆을 붙잡고는 내 볼에 비빈다. 끝에 매달려있던 정액들은 내 볼로, 입술로 옮겨간다. 다시 한 번 그가 이름을 불러온다. 나즈막하게 대답하자 그가 머리를 쓰다듬는다. 문득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을 조르고 싶었다. 그는 섹스가 끝나면 내 이름을 불렀지만 그가 부르는 이름은 언제나 낯설게 다가왔다. 그의 옆에 있는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내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 호시라는 이름은 그가 지어주었지만 그는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이제와서 부르는 이름은 틀림없는 조롱이었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조롱과 동시에 내 인생의 연장선이었다. 그의 입에서 내 이름이 지명되지 않는 것은 몸을 파는 이에게 더는 손님이 없다는 뜻이었고, 내가 여기서 할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좆을 붙잡고, 그가 죽길 고대하며 다시 좆을 물었다. 물었던 좆을 빼내자 민망한 소리가 조용한 방안에 울린다. 방안을 둘러보던 참에 남자가 시선에 맺힌다. 남자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까지 시선을 피하나 싶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진득하게 달라붙는 시선이 느껴질만 한데 남자는 끝내 시선을 주지 않는다. 무뚝뚝한 놈. 샐쭉 웃고는 보스의 자지를 핥는다. 입가의 묻은 정액. 침을 삼키자 정액들이 목구멍 안으로 넘어온다. 마침내 남자와 시선이 마주친다. 갈색의 눈동자, 짙은 눈썹, 고집스레 닫은 입. 남자가 시선을 돌리기 전에 그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시발. 잘생긴 애를 데려오면 어떻게 해. 사람 당황스럽게시리. 남자는 내가 자기를 어떻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이내 미간을 찌푸린다. 아가야. 잡아먹지 않아. 이리 오렴. 턱 끝까지 차오른 말들을 억지로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다. 이불을 끌어모아 배에 떨어진 정액을 닦아내었다. 보스는 바지를 꿰입고 있었다. 애초에 그는 바지만 벗었으니 바지만 입으면 되었다. 이 안에서 나체인 이는 저 뿐이 없었다. 그는 남자가 건네는 바지를 받았고 바지의 붙은 가격표를 떼어냈다. 잠잠했던 권태가 다시금 휘몰아친다.

 

 

 

 

나는 불퉁해진 채 남자가 건넨 옷 꾸러미를 받았다. 곱게 접힌 옷을 한껏 흐트러트리며 느리게 옷을 입었다. 

 

 

 

 

 

"언제 들어왔어"

 

 

 

 

 

내가 말을 걸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남자는 대답을 해줄 상대를 찾는 듯이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남자의 시선에 나와 보스가 담긴다. 시선이 마주치자 어깨를 으쓱였다. 남자가 느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대답해 줄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나보다. 

 

 

 

 

 

"당신이 보스에게 펠라했을 때 부터"

 

 

 

 

 

내가 원했던 답은 그게 아닌데. 1차원적인 답에 웃음을 터트린다.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힘 없는 웃음. 내가 웃음을 터트리자 그는 당황해한다. 그 입에서 천박한 단어가 나오는 것도 어색하게 올라간 눈썹도 의외다. 그는 펠라라는 단어를 내뱉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천박한 것을 경멸하고 동성애를 경멸하고 종래에 나를 경멸할 사람. 왜. 꼭 그거 같았다. 신부님. 검은색 정장을 입어서 그런가. 목 끝까지 채운 와이셔츠 때문인가. 방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웃어 보이는데 남자는 웃지 않는다. 블랙코미디를 보는 듯한 남자. 내 인생의 장면은 분명 블랙코미디일 것이다. 총을 자기 머리에 쏘며 낄낄거리는 B급 영화. 

 

 

 

 

 

"언제 여기 들어왔냐고"


"이제 2년 됐습니다"

 

 

 

 

 

이 조직에서 나고 자란 나와 달리 남자는 다른 곳에서 자라다 이곳으로 왔나 보다. 어쩌다 이런 곳에 오게 되었을까. 남자는 사람을 죽여보았나. 만약 그렇다면, -나는 남자의 손을 붙잡고 하늘을 본 적이 있냐고, 나는 밤하늘을 보며 토악질이 나온다고, 날마다 남자의 좆을 빠는 기분을 아느냐고, 사람을 죽였다면 어떤 사람을 죽였냐고, 그 사람들은 모두 죽었냐고- 나도 죽여줄 수 있느냐고 그런 질문들을 내뱉을지 모른다. 보스가 고개짓을 하자 남자가 다가온다.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볼에 박힌 점. 별처럼 아득해 눈을 감았다 떴다. 뒤처리 좀 해. 남자는 이해하지 못했는지 가만히 서있는다. 보스의 손가락이 나에게 멈춘다. 남자의 시선이 일순간 바뀐다.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얼굴이다. 그런 얼굴이면 상처받는것은 나였다. 분위기가 싸해져 괜히 웃는다. 애초에 분위기가 가라앉는 걸 싫어하는 편이다. 나는 스스로를 낮춘다. 이제 더 이상 위에서 살 수 없다면 아래로 몰락해야한다. 뭉근히 남자의 팔뚝을 쓰다듬었다. 명백한 섹스어필이었다. 내 후장을 손가락으로 쑤시면 생각이 달라질 텐데. 남자가 다시 한 번 얼굴을 구겼다. 농담이야. 이래봬도 처녀라고. 그냥 부축이나 해줘. 남자가 머뭇거리는 동안 담배 3개비를 피워댔다. 재가 흰 이불 위로 떨어진다. 짙게 낀 먼지같이 나풀거리지도 않는 재. 괜스레 재를 손가락으로 닦아낸다. 재는 손가락에 달라붙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다시 한 번 자조하며 웃는다. 꽉 닫힌 방으로 연기가 울렁인다. 어지러웠다.

 

 

 

 

 

보스가 나가자 문 틈으로 담배 연기가 넘실거린다. 남자는 곧바로 태도를 바꾼다. 어깨에 걸쳤던 손은 어느새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전에 들어왔던 사람도 그랬기에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남창에게 잘 보여서 뭐하나. 어차피 끄나풀일 텐데. 애초에 남자는 섹스에 관심이 없게 생겼다. 목 끝까지 채운 와이셔츠라든지 꽉 메인 넥타이라든지. 그러나 이게 무슨 상관인가

 

 

 

 

 

볼품없이 떨리는 발을 내딛는다. 남자는 나를 바라볼 뿐 도와주지 않는다. 무심한 사람. 혼자 걸음을 내딛자 문까지 가는 길이 유달리 길게만 느껴졌다. 하나, 둘, 셋, 넷. 넷에서 쓰러져버렸다. 남자와 거리 삼 미터. 내가 힘들게 걸었던 길을 남자는 이토록 쉽게 다가온다. 손이 눈 앞에 어른거린다. 그 손을 밀어내지만 손은 다시 눈 앞으로 다가왔다. 그를 무시한 채 일어서자 어깨에 손이 닿는다. 손을 쳐내자 남자와 시선이 마주친다.

 

 

 

 

 

"이제 가봐. 벌레 만지는 듯한 표정으로 부축해줘 봐야 기분 좆같으니까"

 

 

 

 

 

남자는 한참을 나를 바라보다 밖으로 나갔다. 나는 바닥에 누워 담배를 몽땅 피웠다. 아. 돗대다. 텅 비어버린 담뱃갑을 저 멀리 집어던진다. 꽉 닫힌 방은 담배 연기로 흐릿하다. 이대로 담배연기로 질식했으면 좋겠다. 점차 의식이 흐릿해져 간다. 저 너머로 검은 게 일렁인다. 검은 것은 점차 또렷하게 다가온다. 검은 것은 실루엣으로, 실루엣은 마침내 남자로 변하였다.

 

 

 

 

 

"다시 한 번 생각해봤는데"


"......"


"쓰러진 사람을 두고 가는 건 아니라고 배워서"

 

 

 

 

 

가득 찬 담배 연기에 콜록이면서 고집스레 말한다. 그게 우스워 눈을 떼지 못했다. 멍청한 것인지 미련한 것인지. 한 마디도 남지 않은 담배를 손가락으로 부여잡고 남자의 와이셔츠에 비빈다. 카라 부분이 새카맣게 타들어 간다. 거멓게 그을린 자국. 그만큼 알 수 없는 그의 머리속. 왜, 아무 반응이 없어. 수많은 의문을 뒤로하고는 담배를 바닥에 짓이겼다. 남자가 내 빈손을 부여잡는다. 이번에는 거절하지 않는다.

 

 

 

 

 

 

 

 

 

 

나는 그를 영영 안 볼 줄 알았으나 영영 안 볼 줄 알았던 것은 언제나 영영 보였고 영영 보였으면 하는 것은 언제나 영영 사라져버렸다. 나를 이곳에 버린 아버지가 그랬고, 아끼던 총이 그랬고, 죽은 사람들이 그랬다. 이제는 내가 보고 싶어 했는지 보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 그 경계마저 흐릿하다. 어쨌든 우리는 꽤 자주 만났다. 보스가 그를 마음에 들어 했는지 내가 그를 마음에 들어 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우리가 만난 횟수를 세어보았다. 열 손가락이 몽땅 넘어갔다. 그와 시선이 마주친 것은, 그는 언제나 고개를 천장에 처박았고 보스가 나가면 고개를 내렸다. 고개가 영영 처박히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한 번은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남자는 여전히 시선을 아래로 처박고 있었다. 그렇게 처박아 놓기에는 당신 시선이 아까운데. 조롱섞인 말에도 남자는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남자의 턱을 붙잡는다. 그제야 시선이 마주친다. 왜, 그래.

 

 

 

 

 

“부끄러워할까 봐”

 

 

 

 

 

실컷 조롱하고 비웃을 참이었는데. 그랬는데.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남자의 대답에 입을 다물었다. 내가 부끄러워할까 봐 그랬다고 한다. 자조하며 웃었다. 내가 부끄러워한다고? 남자는 내 팔에 와이셔프를 꿰주었다. 그렇게 지낼 필요는 없잖아요. 그냥 평범하게 살아도 되잖아요. 같이 가요. 다정하게 내뱉는 말 뒤에 다정이 있을 지 칼이 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눈을 감았다.

 

 

 

 

 

 

 

 

 

남자의 말에 희망을 얻는게 아녔다.


희망을 품으면 품을수록 처참히 깨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그날은 처음으로 보스를 거부한 날이었다. 내 입에 좆을 밀어넣는 그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그가 다가왔다. 옷을 벗기려는 보스의 손을 붙잡았다. 마주치는 시선. 먼저 피한 것은 나였다. 보스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몸을 일으키고는 바지를 추스를 뿐이었다. 보스가 한 동작을 할 때마다 숨을 깊게 들이마 쉬었다. 정적이 흐른다. 눈가가 잘게 떨린다. 눈을 감았다. 침대 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보스는 내게 다가와 머리를 어루만져주었다. 뒷걸음질 치지만 머리카락이 그에게 잡힌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총을 꺼내 들고 있었다. 언제나 보았던 익숙한 장면들. 내가 총을 들고 사람들에게 총을 쏘았던 순간들. 그러나 총을 들고 있는 건 그였고 나는 늘 그렇듯 담담히 받아들일 뿐이다. 총의 해머가 걸린다. 그는 비뚤은 웃음을 뱉어낸다. 초승달처럼 눕혀지는 그의 입술. 그가 입술을 끌어올릴수록 후회가 슬금슬금 퍼져나간다. 뱀에 물린 것처럼 후회가 번지기 시작했다. 뱀은 이윽고 주둥아리를 벌렸고, 나를 문 송곳니. 머리가 새하얘진다. 하얗게 번져나가는 머리속. 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시발. 총구가 이마에 닿는다. 눈을 감았다. 숨이 점차 거칠어진다. 그는 나를 죽일것이다. 그는 나를 죽일 것이다. 그는 나를 죽이고야 말 것이다.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운전기사를 총으로 쏘던 그 이기적임을 알고 있기에, 배신을 한 남자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목에 건 잔인함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무심함을 알고 있기에. 나는 그들보다 못난 존재이지 그보다 더 나은 존재이지 않는다. 나는 죽을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바랐던 순간인데 어째서, 왜. 

 

 

 

 

 

"순영아"

 

 

 

 

 

순영. 그 이름을 오래도록 곱씹었다. 이제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죽은 내 아우의 이름. 내 이름이었던 이름. 나는 내가 지명을 당하지 않으면 끝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는 내 이름을 부름으로써 끝을 고했다. 그는 내게 준 이름을 다시 앗아갔다. 차라리 호시라고 불러주었으면 일말의 희망이라도 생겼을 텐데. 나는 영영 땅바닥에 처박힌다.

 

 

 

 

 

"앞으로 너에게 30분을 줄 거야"

 

 

 

 

 

곧게 펴진 그의 세 손가락. 뒤늦게 휘몰아친 감정은 배신감이었다.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싼 채 오랫동안 숨을 골랐다. 숨이 규칙적으로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숨을 내뱉고 다시 들이마시길 반복했다. 숨을 아무리 골라도 숨은 돌아올 생각을 안 한다. 머리를 쥐어뜯는다.

 

 

 

 

"도망쳐"


"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뒷주머니에서 총을 꺼낸다. 언제나 총을 가지고 있으라는 보스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어지럽다. 모든 게 이리저리 뒤섞힌 채였다. 구역질이 났다. 총구는 보스에게 향한 채였다. 뱀이 총구를 타고 기어오른다. 은밀하게 쓰다듬는 손가락. 어차피 쏘지도 못하는 총을 왜 들고 있니? 아니에요. 나는 사람을 죽일 수 있어요.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요. 그렇다면 나를 다시 받아줄 건가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답을 해줘요. 벙어리처럼 입 다물고 있지 말고 그 잘난 입을 열라고요. 그는 다시 내 이름을 부른다. 권순영. 천장을 향해 총을 쏘았다. 별처럼 박히는 총알들. 시멘트 부스러기가 떨어진다. 창문이 깨지고, 소파의 가죽이 찢어지고, 쿠션의 깃털이 흩날린다. 이제 됐냐는 눈동자. 시발. 다시 총구를 보스에게 겨눈다. 보스를 쏘지만 형편없이 빗나간다. 총알이 보스의 뺨을 스친다.

 

 

 

 

 

뱀이 자신의 뺨을 핥았다.

 

 

 

 

 

보스는 내 위에 올라타 주먹을 내리 꽂는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주먹을 받아내었다. 입안에 피가 고인다. 뱉어내려 했지만 보스가 내 멱살을 잡고 들어올려 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볼품없이 콜록인다. 새하얀 와이셔츠 위에 흩날리는 핏방울들. 

 

 

 

 

"이빨을 잃어버린 개는 필요 없어. 그나마 씹질이라도 잘해서 옆에 둔 건데"


"시발"


"이제 21분 남았네"


"어차피 죽일 거면서"


"그냥 죽이면 재미없잖아. 네 아우가 어떻게 생각하겠어"

 

 

 

 

 

한 순간 끓어오랐던 것들이 죄다 식은 듯한 기분이었다. 아, 순영아. 내 어린 아우야. 너는 내 삶에 녹아내렸지만 나는 너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순영아. 네가 죽은 뒤로 사람을 죽이지 못하게 되었다. 네가 죽은 뒤로 나는 점점 땅바닥으로 처박히고 있었다. 내 아우. 죽어버린 순영이. 총을 맞은 순영이. 붉은 꽃을 피우던 순영이. 내가 죽인 순영이. 너 대신 내가 죽었더라면 너는 행복했을까. 내가 죽었더라면 너는 내 무덤에 꽃을 놓아주었을까. 터진 입가에서는 피가 흘러나온다. 무릎을 꿇은 나를 그가 비웃는다. 나를 죽여줘. 제발 나를 죽여줘요. 그는 고개를 젓는다. 도망쳐. 도망치라고. 네가 잘하는 거잖아. 옷을 대충 추스르고는 몸을 일으킨다. 꺾여진 나뭇가지처럼 휘청인다. 째각. 째각. 이제 16분. 남았어. 그가 내뱉는 말이 밧줄이 되어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누구보다 죽길 원하고 있었는데 내 알량한 몸은 그걸 허락해주지 않는다. 이건 술래잡기였다. 그가 술래고 내가 쫓기는 사람인. 내가 죽어야만 게임이 끝나는 병신같은 술래잡기.

 

 

 

 

문을 열자 그가 보인다. 그를 붙잡고 내 모든 것을 쏟아내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은 내 업보였다. 내가 짊어지고 말아야 하는 것.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내가 평범하게 살 수 있어. 쓸데없는 희망을 품게 한 남자도, 그 말을 믿은 나도,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나도, 전부 미웠다. 그런 것들을 한데 모아 깊은 구덩이에 잔뜩 쏟아놓고 파묻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도로 파헤쳐 버리는,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선, 다정스럽게 내뱉는 말, 부드러운 목소리들.

 

 

 

 

 

"왜 그래요. 보스한테 잘못이라도 한 거에요?"


"보스가 요즘 좀 과격한 플레이를 좋아하네. 앞으로는 여기 못 올 것 같아. 안녕"

 

 

 

 

 

죄여오는 팔을 뿌리치고는 무작정 달렸다. 흘러가는 액자, 벽지, 책장들. 그 속에 멈춰있는 남자

 

 

그는 거짓말임을 알고 있었고

내가 거짓말임을 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 *

 

 

 

 

그가 쫒겨나듯 도망친 뒤 삼 일이 지났다. 

 

 

 

 

 

방안은 처참했다. 깃털은 가라앉은 채 침대 위로 흩뿌려져 있었고, 한가운데 놓인 소파도 잔뜩 난도질이 된 채 비뚤게 놓여있었다. 창 밖으로 찬 바람이 새어 들어오자 깃털이 이리저리 흩날린다. 보스는 침대에 누워서 그것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꺼져. 보스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고 문을 굳게 잠갔다. 다음날, 방을 치우려 사람이 들어왔지만 보스는 그들을 내쫓았다. 괜찮다고 내버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총을 쏘았다. 그리고 오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오늘은 어떤 히스테릭을 부리려나. 문 앞에서 가만히 서있는다. 문을 두드려야 하나. 우선 사과부터 해야하나. 보스에게 맞은 곳은 괜찮으려나. 아니. 그가 있으려나. 없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했는데. 그런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차는데 문 뒤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은 더 거세진다. 들뜬 남자 신음소리. 보스에게 깔린 채 신음을 내뱉는 그를 생각하자 불쾌해졌다. 발걸음을 돌려 돌아가려는데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보고싶다. 맞은 곳은 괜찮은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고 싶었다. 보스에 혐오와 그를 보고싶은 마음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뒤엉킨다. 이거 진짜 중요한 서류에요. M의 당부가 머릿속을 맴돈다. 문 손잡이를 돌렸다. 이긴 건 그였다.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침대 위에 흐트러진 남자였다. 이리저리 흩어진 머리카락은 노란색이 아니었다. 갈색 머리의 남자. 손에 들린 서류가 정차 없이 구겨진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천천히 다가간다. 그를 어떻게 했냐고 무슨 말을, 무슨 행동을 했길래 도망갔냐고 묻고 싶었다. 코앞까지 다가가자 살며시 접히는 보스의 눈가. 서류를 건네자 보스가 밀어낸다.

 

 

 

 

"이거 내 거 아니야. 네 거야"


"네?"

 

 

 

 

보스는 봉투에서 종이를 꺼낸다. 종이 끄트머리에는 한 사진이 매달려있었다. 입을 다문 채 정면을 바라보는 남자. 금발. 줄곧 눈으로 좇았던 그.

 

 

 

 

"호시"

 

 

 

 

서류에 쓰인 이름을 조심스럽게 읽는다. 별. 호시. 나는 그의 이름을 수 없이 많은 별만큼 불렀다. 아. 별이 졌구나.

 

 

 

 

"배신자야. 죽여"


"어디사는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찾아요"

 

 

 

 

 

괜스레 불퉁한 말이 튀어나왔다. 너를 찾으면 분명 너는 죽게되겠지. 한숨을 내뱉었다. 시선이 교차된다. 사진속의 너는 무척이나 배신과 멀어보였다. 한낱 남창에 불과한 이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오랫동안 시선을 마주했다. 그를 좋아한게 아니였어요? 글쎄. 왜 그렇게 무정하게 말하는거에요. 그의 멱살을 잡는다. 그가 나를 비웃는다. 그 녀석을 좋아해? 한낱 남창에 불과한 그 녀석을 왜? 그는 너를 좆도 신경쓰지 않아. 이를 갈았다. 그는 친절하게도 내게 너의 과거를 알려주었다. 하나, 너가 처음부터 남창으로 생활한 것은 아니다 둘, 너는 보스의 오른팔까지 한 유능한 인재였다. 셋, 너는 사람을 다치게 할 수는 있으나 죽이지 못한다. 의외였던 것은 보스의 곁에서 일했다는것. 몇 년동안 알고지낸 수 많은 이들에게 박히는걸 보여주는 기분이 어땠을까. 무참히 깨지는 네가 생각나 문득 슬퍼졌다. 그는 무참히 깨지는 너를 보고 비웃었을 것이다. 나를 처음 불렀을 때 그는 웃고 있었으니까. 네가 자주가는 클럽을 들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왜 당신이 직접 가지 않은 겁니까. 네가 가는 게 그에게 고통일 테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가 너를 좆도 신경 쓴다는 말이야. 그런데 병신인 너는 내 말을 거역 못할거야. 안그래? 석민아. 그의 말대로 나는 그의 말을 거역하지 못한다. 피로 낭자하던 너와 달리 그의 얼굴을 멀쩡해 보였다. 한 대 주먹으로 갈겼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샐쭉 웃는다. 그가 타라고 준 차를 타는 대신 걸어갔다. 너는 무슨 생각을 하며 수 많은 네온사인이 내리쬐는 곳을 걸어갔을까.

 

 

 

 

 

"호시라고 알아요?"

 

 

 

 

 

 

시끄러운 노래가 울려 퍼진다. 바텐더는 소리를 듣지 못한 듯 다시 내게 물어온다. 호시라고 알아요? 그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손가락을 핀 채 왼쪽을 가리켰다. 방 문은 굳게 닫은 채였다. 불안감이 다시금 나를 덮친다. 왜 너에게로 가는 문들은 모두 닫혀있나. 두려움에 떤 채 방문을 열었다. 너는 여느 때처럼 누군가에게 깔린다. 단지 상대가 보스가 아니라는 것뿐. 시선이 마주친다. 나도 너도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샐쭉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그. 왜 이곳에 있는거예요. 왜 먼 데로 가지않고. 왜 보스 말처럼 여기 있는거예요. 보스에게 당신의 예상은 틀렸다고 말할 작정이었는데 당신은 왜.

 

 

 

 

 

너의 위에 올라탄 남자를 사정없이 주먹으로 치고 발길질을 했다. 너는 힘없는 웃음을 짓는다. 결국 왔구나. 사정 후 누워있는 너에게 주구려 앉아서 묻는다

 

 

 

 

 

"보스는 당신이 배신했다는데"


"글쎄"


"왜 그랬어요"


"내가 보스에게 총을 겨눴거든. 이렇게"

 

 

 

 

 

악마의 속삭임. 너는 근처에 있던 총을 잡는다. 총구가 들이밀어진다. 새까만 구멍. 너는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듯 행동하고 있었다. 자켓에서 총을 꺼내 너를 겨눈다. 서로를 마주한 총

 

 

 

 

 

"총 놔요"

 

 

 

 

 

 

텅 빈 너의 눈이 일순간 형형히 빛났다.

 

 

 

 

 

 

 

 

 

*보스=디케이
*석민X호시
*호시와 순영이는 디케이의 밑으로 들어옵니다. 그러나 순영이는 어떤 사건으로 죽어버리고 호시는 순영이라는 이름으로 살게되죠. 디케이는 그런 호시에게 호시라는 이름을 줍니다.

안녕하세요 몬트입니다. 저번에 웹진에서 뵙고 이렇게 또 월간석순으로 참여하니까 너무 좋네요. 헿ㅎㅎㅎ

월간석순 생겨서 너무 좋아요!!!(방방사실 1부작이었으나 저는 끊지 못하는 병에 걸려 2부작이 되어버렸네요.... 헣허허허..... 그래도 3부까지는 가지 않겠죠? 조직물... 석순 섹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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