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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중단편

술래잡기 下


http://youtu.be/oNJGAwqV0ys




  그런데 나는 그 아이를 죽일 수 없었어. 
  그 아이가 죽는 걸 볼 수 없었어. 
  나는 그 아이를 살린 것을 후회하지 않아. 

  힘겹게 웃었다. 




  다시 한 번 얼굴이 처박힌다. 몰아치는 물에 숨을 들이켜지 못하고 온전히 받아내었다. 어쩌면 내 존재 자체가 불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술래잡기 下 

W.몬트






   며칠을 그곳에 틀어박혀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곳에는 시계가 없었고 창문이 없었고 거울이 없었다. 시간과 세상과 자아를 망각한 채 딜러에게 모든 재산을 올인하고 마는 나. 나는 그들에게 내 삶을 모두 밀어 넣고 있었다. 내 삶은 녹슨 테이블에 흐트러진다. 그들이 웃음을 쏟아낸다. 그들 속에서 웃지 않는 것은 나 하나다. 이게 웃겨, 라는 물음은 웃음소리에 집어 삼켜진다. 이게, 웃겨? 다시 한 번 물어보지만 그들은 대답하지 않은 채 테이블을 두드릴 뿐이다. 테이블을 발로 차지만 바닥에 고정된 테이블은 밀리지 않는다. 기분 나쁜 긁힘이 귓전을 때린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그들은 나를 다시 도마 위로 올려놓는다. 어둠 속에서 뱀이 똬리를 튼다. 뱀은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송곳니 사이로 피어오르는 흰 연기 덩어리들. 발에 스치는 낯선 감각에 바닥을 바라보자 발 근저에 뱀의 꼬리가 놓여있었다. 테이블부터 시작해 건너에 있는 발까지 꼬리를 늘어트린 뱀이 괴이하다고 생각했다. 뱀의 꼬리는 뱀의 얼굴로 변해 내 발밑에서 나를 바라보았다. 다문 입 사이로 송곳니가 빼죽 튀어나왔다. 그것을 핥는 뱀. 금방이라도 발목을 물 듯 입을 벌린다. 그것을 걸어. 네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뱀의 말에 내 남은 삶을 몽땅 밀어 넣는다. 또다시 흐트러지는 내 삶. 뱀의 맞은편에 앉자 뱀은 느긋하게 입꼬리를 끌어 눕힌다.
 



  몇 번의 시선과 몇 개의 카드가 얽힌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아까와 같이 반복되고 있었다. 내 손에 들린 패는 최악의 패. 게임은 끝을 향해가고 있었고 뱀은 이제 승리를 선언하면 되었다. 내가 지고 뱀이 이기는 결말은 그와 게임을 할 때부터 이미 결정난 사안이었다. 내가 질 게 뻔한 게임. 나는 묵묵히 패를 쥐어든 채 그들이 내 삶을 끝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귓전을 때리는 타격음. 뱀이 길게 늘어트린 꼬리가 발에 닿았으며 뱀의 꼬리가 뱀의 얼굴로 변하였고, 뱀이 자신의 뺨을 핥았고, 뱀은 입을 벌렸다. 그것을 걸어, 네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이제 가진 게 없어요. 웃음소리가 들린다. 





  눈을 떴다. 웃음소리는 여전히 귓가를 맴돌았다. 조용한 방안에서는 호흡을 가다듬는 소리마저 생경하다. 내가 내뱉는 호흡을 오롯이 들으며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직도 살아있구나. 맨바닥에 누우며 꿈을 곱씹었다. 꿈을 꾸었으나 꿈을 꾸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았다. 제대로 잔 날이 많지 않았기에 잠자리에 들었다기보다는 꿈에 들은 날이 많았다. 꿈에 들면 대개 한 사람이 나왔다. 나는 그 사람에게 도망치고 있었고 내가 있던 자리에서 총성이 울렸다. 계속된 반복. 권순영에게서 도망치는 꿈. 그런데 오늘은 그 꿈이 아니었다. 실로 오랜만에 뱀을 봐서 그런지 꿈에서 뱀이 나왔다. 뱀은 내게 물었다. 나를 물었던 것도 같았다. 땀에 젖어 등어리에 달라붙은 셔츠를 억지로 떼어놓았다. 맨바닥에 놓여있는 몸을 일으킨다. 옷에 묻은 물이 다 마른 것을 보니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았다. 가쁜 숨을 가다듬는다. 목을 훑자 손등에 땀이 묻어나왔다. 손등을 바라보았다. 뱀에 물린 자국처럼 나 있는 송곳 자국. 아니 이것은 송곳니다. 뱀의 송곳, 니. 열이 식자 추위가 밀려왔다. 추위에 몸을 옹송그려보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초라하게 놓여있는 나. 일 분이 한 시간 같았고 하루 같았으며 일주일 같았다. 아니 이곳에 있으니까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물을 잔뜩 먹은 머리도. 쉼 없이 구타당했던 몸도. 어지러운 감각도. 





  아. 돌아버릴 것 같다. 





  이미 돌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실없는 웃음이 벌어진 입 틈으로 새어 나온다. 일 분이 일 분이 아니었다. 누가 내 시간을 억지로 늘린 것 같이 내 시간은 잔뜩 늘어진 채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탄력을 잃은 고무줄같이 끊어지지도 못하는 삶. 일주일 같은 시간이 어쩌면 이틀일 수도 있고, 하루일 수도 있다. 그 시간 동안 죽기 위해 죽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봤다. 깨트릴 만한 것, 부러트릴 수 있는 것, 상처를 낼 수 있는 것들을 찾아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에는 죽을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정신병원 같았다. 죽이지 않고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곳. 그들은 죽지 않을 만큼에 고통을 줬다. 그들을 부여잡고 차라리 죽여달라는 날이 많았다. 그들은 나를 비웃고는 방에 던져놓았다. 방이라기보다는 시멘트 덩어리로 둘러싸인 공간이었다. 그 회색 공간을 한 바퀴 돌자 발에 묶인 사슬이 잘그락거린다. 숨을 멈추었다 다시 내뱉기를 반복했다. 이번에 깨어나면 그곳으로 보내. 어디로? 어디로긴 어디야. 그 새끼가 있는 곳이지.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들었던 말들이 생경하다. 발걸음이 지나갈 때마다 숨을 멈추었다. 그들이 나를 끌고 내 손에 총을 쥐여줄까 봐 두려웠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못해요. 그들은 내 말에 폭소한다. 안 죽이는 것은 아니고? 죽일 수 있잖아. 괴물이 어딜 가겠어. 





  양말에 꽂아두었던 클립을 빼 들었다. 그를 구하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때 챙겨두었던 클립이었다. 둥글게 굽은 클립을 손으로 편다. 한 번 굽은 탓에 평평하게 펴지지 않는 클립. 울퉁불퉁한 그것을 족쇄 구멍에 집어넣는다. 손을 몇 번 움직이자 얼마 안 가 족쇄가 풀린다. 무거운 소음을 내뱉고 떨어지는 덩어리들. 오른쪽 다리가 쇠에 쓸려 벌겋게 변해 있었다. 비척거리며 문으로 다가간다.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댄다. 잠겨있으면 어쩌나. 문밖에 뱀이 있으면 어쩌나. 수만 개의 생각들에 짓눌려 문을 열지 못했다. 다가왔던 발걸음이 멀어져간다. 도망친다. 그 단어에 숨을 들이마시었다. 그들에게서 도망친다. 문장을 내뱉자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이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일이었다. 애초에 이곳으로 오지 않으면 되었지만 이곳으로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내가 평범한 사람으로 살 수 있나.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서. 그들이 그를 죽게 할 것을 알았으면서. 모순이다. 죽기 위해 도망친다. 애초에 모순으로 가득 찬 삶이었다. 문고리는 잠겨있지 않았고 뱀이 서 있지도 않았다.




  숨을 들이마시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수많은 물음이 뒤따랐다. 바다로 가자. 바다로. 바다로 가서 물에 빠지자. 뱀은 물을 무서워했다. 뱀의 가족이 몽땅 홍수로 죽어버렸기에 뱀은 물을 무서워했다. 그러니까 물에 빠지자. 심해로 가라앉자 




가 
라 
앉 

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도망쳤다. 귓전을 때리는 사이렌을, 웃음을 터뜨리는 뱀을, 그리고 너를. 그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또다시 도망치고야 말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도망뿐이다. 이석민을 죽일 수도 없고, 나를 죽일 수도 없다. 나는 살아있으면 안 돼. 나는 나를 죽이기 위해 하염없이 달렸다. 뒷전으로 총소리가 들렸다. 총알이 허벅지를 스친다. 신음을 내뱉을 틈도 없었다. 다시 한 번 총알이 스친다. 이번에는 팔뚝이었다. 빗나간 게 아니다. 그들에게 나는 한낱 사냥감이었다. 목을 노리면 안 된다. 뒤쫓는 무리 중 한 남자가 그렇게 외친다. 목을 노리면 안 돼. 뱀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내가 너를 잡아야 하니까. 너를 죽여야 하는 것은 나니까. 맨발인 탓에 발바닥에 나뭇가지가 박힌다. 소리를 지르는 대신 이를 물었다. 그들에게 잡히면 그들은 너를 죽이게 할 것이다. 그게 그들이 원하는 시나리오니까. 그러니까 나는 도망가야만 했다 어디로. 끊임없이 물음이 새어 나왔다. 네가 없는 곳으로. 산 아래로 내려가자 그들은 발걸음을 멈춘다. 뭐에 막힌 듯 움직이지 않는 그들. 뒤를 돌아보자 남자들이 멀어진다. 발걸음을 멈춘 채 바라보는 그들. 이질적이었다. 한 동안 그들과 대립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발걸음을 돌린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  





[여보세요, 아. 이도겸. 호시를 놓아줬어] 
"목숨은" 
[그냥 가벼운 총상] 




   뱀은 나즈막하게 읊조리고는 전화를 끊었다. 끊어진 전화를 저 너머로 던지고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창밖으로는 비가 내렸다. 시끄럽게 창을 두들기는 비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뭉친 물방울을 비집고 새 물방울이 들어찬다. 때늦은 가을비였다. 가을 비. 뱀이 나타난 날도 이랬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가을이었나 봄이었나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와이셔츠 한 장만 입었기에 여름도, 겨울도 아니었다. 봄과 가을 사이. 그 어딘가, 다른 조직과 트러블이 났다는 이강민의 말에 그곳으로 갔더니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시체들 위에 앉아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아침에 보았던 남자의 얼굴이 짓눌려진 채였다. 담배를 붙잡은 손등 위로 뱀이 그려져 있었다. 뱀은 손등에서 잉태해 꼬리를 늘어트렸다. 이강민은 문신을 하는 이들을 혐오했기에 조직원들 중에 문신을 한 사람은 없었다. 처음 보는 문신은, 검은색 선으로 뒤덮인 팔은 그때 보기에는 꽤 낯설어 계속 들여다보았다. 문득 시선이 마주친다.





  "뭘 봐, 시발" 




   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전화를 건 이강민은 짜증이 뒤섞인 말을 내뱉고 있었다. 씨발, 그냥 와. 씨발새끼는 저인데 씨발이라고 내뱉는 꼴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끊었을 때 남자는 사라진 뒤였다. 돌아오라는 전화의 조직으로 돌아갔고, 그 날 이강민에게 무참히 씹혔다. 뭐 했냐고 욕을 듣기도 했고 누구냐고 추궁을 들었기도 했다. 내가 갔을 당시에는 이미 종결난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퍽 억울했다. 다음날, 그를 마주한 것은 이강민의 방이었다. 이강민은 어젯밤 있었던 사건에 대해 고했다. 조직원 반 이상이 죽었다는 사건에 화를 내며 그 새끼를 잡아들이라고 했다. 남자의 사진이 출력된 종이를 바라보았다. 화질이 낮아 잘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얼굴을 찌푸려 볼 수밖에 없었다. 뱀이라고 불리는 사내 때문에 씨발놈은 씨발이라고 외치며 씨발된 상태에 처했다. 씨발. 그는 마호가니 소파에 파묻힌 채 내뱉었다. 이강민이 준 사진을 바라보았다. 뱀. 뱀의 문신을 가진 사나이. 이름과 나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젠가 뱀은 이곳에 나타났다. 원래 이곳에 있었던 것처럼 터를 잡았고, 이야기를 건넸고, 술을 마셨다. 사람들은 이방인인 그를 경계했지만 뱀은 이렇다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청부살인업자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팔에 비늘처럼 나 있는 화상 자국 때문에 뱀이라고 불렀다. 뱀. 꽤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쭉 찢어진 눈이 뱀 같았으니까. 저도 그를 뱀이라고 불렀다. 뱀. 팔에 비늘 같은 화상 자국이 있는 뱀. 




  이강민의 횡포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그때의 나는 이강민을 죽이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직접 이강민을 죽이고 싶었으나 그러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내가 이강민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웬만한 조직원이 다 알았다. 그리고 나도 조직원들이 이강민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빨 빠진 호랑이었지만 호랑이는 곧 죽어도 호랑이었다. 이 조직에서 이강민을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은 그를 따르고 싶어하는 이보다 많았지만 이강민의 세력은 막강했다. 직접 나서는 대신 죽여줄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했다. 조직원이 그런 나를 보고 죽이고 싶은 사람이 생겼냐고 물었다. 나는, 이 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죽이고팠던 사람인데. 어느날 유능한 살인청부업자의 전화번호를 받았고 그는 뱀이었다. 뱀은 비밀유지와 의뢰비용 대신 호시를 자신의 밑으로 데려갔다. 최고의 살인청부업자로 기를 거야. 능력이 있는 아이잖니. 이강민은 아직도 그가 호시를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는 자신과 관련된 사실이 아니면 신경 쓰지 않으니까. 



  뱀이 호시를 데려간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순영이 그를 보고 싶다고 말한 날이 많았다. 호시가 언제 오느냐고 묻는 날이면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돌아올 거야. 언제. 순영은 이상한 곳에서 집요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언제. 다시 한 번 내뱉는 말에 머리를 굴렸다. 올해는 너무 빠르고 십 년은 너무 길다. 삼 년. 낯선 날을 입으로 굴려 익숙하게 만들어본다. 불확실한 말을 내뱉지만 순영은 그 말을 믿었다. 호시를 다시 본 것은 삼 년 하고도 이년이 더 지난 후였다. 삼 년째가 된 날, 순영은 종일을 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계속해서 문만 쳐다보고 있었다. 한 달이 되던 날 순영은 문득 내게 물었다. 거짓말한 거지. 나는 대답을 회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순영은 고개를 숙였다. 사실 알고 있었어.



  차라리 이렇게 나타날 거면 차라리 나타나지 말지. 그 작은 마음에 상처를 냈으면 냈지 죽어버리게 냅두지 말지. 호시가 떠난 지 삼 년 하고도 이 년이 되던 날 호시를 다시 본 순간 머릿속에 든 생각은 순영에게 말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를 알아보지 못할 뻔 했다. 그는 나에게 죽었다고 여겨졌던 남자였기 때문에 달라진 그를 그냥 지나칠 뻔했다. 그 몇 년 사이 왜소했던 골격은 단단히 자랐고, 갈색이었던 머리는 노란색으로 탈색되있었다. 호시는 달렸다. 말을 걸려고 했으나 그는 달렸다. 호시는 도망갔고 그 자리에 이강민과 피를 흘리는 권순영이 있었다. 





  이강민.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은 이강민이 왜 아무것도 아닌 권순영을 죽이는가. 순영에게 달려가는 나를 보고 그는 웃음을 터뜨린다. 도겸아, 그 녀석을 좋아하기라도 한 거니? 네가? 왜? 그는 너를 좆도 신경 쓰지 않는데! 총성이 울린 것은 순간이었다. 그는 여전히 웃음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가 총알에 맞는다. 무너지는 그. 뒤에서 총성이 다시 들린다. 뒤를 돌아보았을 때 뱀이 있었다. 연기를 내뿜은 채 서 있는 뱀. 뱀은 총을 난발한다. 그의 머리에, 팔에, 다리에, 심장에, 인중에 박히는 총알들. 뱀은 이강민에게 다가오면서 계속해서 총을 쏘았다. 누군가가 다가왔다. 어린 소년이었다.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이강민의 아들인 아이. 순영이 그와 곧잘 놀아서 기억하고 있었다. 뱀은 소년에게 총을 쏘려다 총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총을 저 멀리 던졌다. 소년은 도망간다. 소리를 터트리면 안 된다는 듯이 입을 꼭 막은 채로 달렸다. 웃음을 터뜨렸다. 호시 같이 도망가는 소년. 왜 그런 거에요. 뱀에게 묻는다. 뱀은 화상 자국을 가리킨다. 화상 자국을 감싼 뱀. 이강민이 내 손에 불을 질렀어. 담담히 내뱉는 뱀. 
 



  순영에게 다가간다. 싸늘하게 변한 순영. 피에 둘러싸인 순영. 수줍은 미소를 뱉던 순영. 언제 오느냐고 묻던 순영. 그런 순영을 버리고 간 너. 순영을 지키지 못한 나. 총을 머리에 가져다 댄다. 머리통에 느껴지는 낯설은 감촉. 뱀이 내게 총을 겨눈다. 웃겼다. 죽으려는 사람에게 왜 총을 겨누나. 



"그의 아들이 살아있어" 
"그런데" 
"그의 아들을 죽여야지" 




 그래. 그의 아들이 남아있구나. 이강민이 순영을 죽였으니 나도 그의 아들을 죽이는 수 밖에 없다. 이게 내 유일한 속죄. 나는 내 머리에서 총을 거둔다. 순영을 안는다. 순영을 어루만지자 손에 피가 묻어나온다. 




  호시야, 사방이 적인 그의 아들을 어떻게 지킬 거니. 호시야, 언젠가 죽이겠다고 말한 그의 아들을 너는 죽일 거니. 사랑과 증오. 순영을 닮은 너를 사랑하지만 그에게서 도망친 너를 증오하는 것처럼 너도 너를 사랑하는 그를 사랑하지만 순영을 죽인 이강민의 아들을 증오하니. 호시야. 










 하루가 넘게 걸었다. 찻길을 따라 걷고 걸었다. 행여나 차가 나타나면 그들일까 싶어 숲 속으로 몸을 숨겼다. 무조건 서쪽으로 걸었다. 동쪽과 남쪽은 너무 멀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바다내음이 날 때까지 걷고 걸었다. 하루를 넘게 걸었으나 비린내는 내게서 나고 있었다. 총알에 스친 부근을 바라보았다. 붉은 꽃은 그 부근에서 흘러나와 팔을 뒤덮었다. 도착하기 전에 지쳐 쓰러 죽어버릴 수도 있다. 발걸음을 멈추었으나 발걸음이 들렸다. 누군가 따라오고 있다. 순간 식은땀이 등어리를 비집고 흘러나왔다. 정막을 깨는 발걸음이었으므로 알아채기를 바란 걸음이었다. 도망치기에는 너무 지쳐있어 찬찬히 뒤를 돌아보았다. 





너에게서 멀리 도망치고자 했는데 도망친 곳에서 너를 만났다. 





 너는 그랬다. 너의 발걸음에는 소리가 없었다. 이따금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면 네가 있었다. 언제부터, 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이게 뭐야. 왜 네가 여기에 있어. 너는 이렇다 말을 내뱉지 않은 채 내 옆에 섰다. 가요. 너는 그렇게 읊조리고는 발걸음을 뗐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으나 너는 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너는 걸음을 옮기지 않은 나를 바라본다. 어떻게 여기 왔어. 너의 고개가 아래로 처박힌다. 너의 시선이 흙투성이인 내 발에 머무른다. 문뜩 그 시선에 부끄러워 마주친 시선을 회피했다. 너는 줄곧 쥐고 있었던 핸드폰 화면을 보여준다. 지도 위에 뜬 빨간 점. 이도겸이 보내줬다 말하는 너. 그제야 깨달았다. 이도겸이 그들과 내통한다는 사실을. 뱀은 나를 그리 순순히 놓아줄 리 없었다. 뱀이 허투루 살 일 없었다. 시발. 위치 추적기를 언제 달아놓은 거지? 옷에 달았나? 아니면 수술했을 때? 그보다 더 오래전에? 이도겸은 너를 죽일 거야. 이도겸이 너를 죽일 거라고. 이도겸이 너를 죽이기 위해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다쳤어요. 술래라는 사람이" 
"이석민" 
"이제 내가 술래예요. 도망가요, 이번에는 나와 함께" 
"위치추적기가 그들한테 있잖아. 도망 못 가" 




 뭔가 잘못되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불행을 안고 태어난 이었기 때문에 그 불행이 너를 좀 먹을 것이다. 나는 불행을 먹고 자랐다. 그러니 분명 불행을 먹고 자란 나에게는 불행의 테가 있을 것이다. 나무가 물을 먹고 나이테가 자라는 것처럼. 나는 불행에서 태어났고, 불행을 먹고, 불행과 자랐으니 불행은 나의 나이테에 녹아들었을 것이다. 





"그들한테 있지 않아요. 옷에 있어요" 




 너는 그렇게 말하며 내 옷에 붙은 상표를 떼어낸다. 차가운 손이 목덜미에 스친다. 뭉근히 쓰다듬는 손길. 상표를 손가락으로 짓누르자 화면에 뜬 붉은 점이 사라진다. 제 말 맞죠? 너는 내 손을 잡는다. 그 손을 떼어내자 너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내 몸속에 심어놓았을 거야. 절대, 그들을, 벗어날 수 없어. 문득 메스꺼움이 내 몸을 휩쓸었다. 내가 걸었던 길들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나는 왜 그 길들을 걸었나. 결국에는 너에게로 가는 길일 텐데. 내가 너에게 도망가면 그들은 너를 내 앞에 둘 것인데. 





"돌아가. 이석민" 
"같이 가요" 
"도망가" 
"같이 가요" 
"그들의 개라는 사실을 알고 있잖아" 
"그렇지만" 
"이건 너를 죽이려는 함정이야. 너는 거기에 놀아난 거고. 너를 납치한 것도, 네 아버지를 죽인 것도 그들이잖아." 
"당신이…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당신도, 그랬어요?" 
"응. 그러니까. 석민아. 도망가" 
"키스해줘. 그렇지 않으면 죽일 거야" 
"너는 나를 죽이지 못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너 나 좋아하잖아" 




 네 목에 총을 대며 말했다. 너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나 당신 좋아해요. 그러는 당신도 나를 못 죽이잖아. 왜냐하면 너는 사람을 못 죽이니까. 확신에 찬 말투. 너는 내 머리에 총을 겨누며 말한다. 머리에 닿는 총구. 





"그러니까 사랑한다고 말해줘" 
"..." 
"좋아한다고 말해줘. 당신이 배신한 게 아니라고 말해줘. 그날 날 구해준 건 당신이 맞다고 말해줘.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해줘. 살고 싶다고 말해줘" 
"..." 
"나와 같이 가고 싶다고 말해줘" 
"나는 아니야" 
"거짓말" 
"아니야" 
"그런 것 다 필요 없으니 같이 가요. 아무도 없는 섬으로 멀리 가요. 보스도, 그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그럴 수 없다는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사랑해요. 사랑하고 있어요" 
"이런 비뚜른 사랑도 사랑이니? 엿 같은 우리 관계를 아니? 구역질이 나는, 우리 관계를 아니?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어. 나는 너를 구해준 것만으로도 토악질이 나오는데.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나는, 석민아. 나는. 너를 구해준 걸 후회하지 않아" 





 우리는 어딘가 미쳐버린 게 틀림없다. 아니 분명 미친 게 틀림없다. 










  발소리가 들린다. 한 명의 발자국이 아니다. 지붕을 두들기는 비처럼 수많은 발소리. 작게 콧노래가 들려온다. 젖은 땅 위로 검은 구두가 모습을 드러낸다. 비가 오지 않음에도 우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권순영이 죽은 뒤 검은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이도겸. 검은 정장을 입은 그. 머리를 올린 채 나를 내려다보는 그. 그는 우산을 접는다. 곱게 접힌 우산에 기대 바라본다. 






"호시야. 술래잡기는 끝났어" 
"왜, 여기에" 






  너는 내 앞을 막아선다. 그가 금방이라도 총을 쏠까 두려워 너를 감추려 하는데 너는 자꾸만 앞으로 나온다. 총이 어디에 있는 거지. 그는 칼을 쓰지 않았다. 칼이 살을 비집고 들어갈 때까지 잡고 있어야 한다고 그는 칼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그는 내 시선을 알아차린 듯 손을 머리 위로 들어 보인다. 그는 비뚤게 서고는 담배를 피웠다. 하얗게 퍼져나가는 담배 연기. 내가 너를 왜 쏴. 





"비켜. 이석민" 
"보스가 당신을 죽일 거예요. 그런데 내가 왜 비켜요" 





 그는 너의 말에 웃음을 터트린다. 이석민, 내가 왜 호시를 죽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인데. 걱정해야 하는 것은 네 목숨이지. 그가 손짓하자 옆에 서 있던 남자가 그에게 총 두 자루를 건넨다. 그는 총을 너에게 겨누고 한 개는 나에게 던진다. 바닥에 널브러진 총. 주워. 시선이 마주친다. 어둡게 가라앉은 눈. 주워. 만약 이석민이 줍는다면 바로 머리통이 날아갈 거야. 강압적인 말에 다리를 굽힌다. 내가 가지고 다녔던 총. 뱀이 주었던 총. 그 날에 그 장소에 두고 갔던 것인데 왜 어째서 내게로 돌아왔나. 





"그를 죽여" 
"이석민 말고 나를 죽여" 
"죽여!" 
"이제 술래잡기도 질렸어." 
"호시야. 이석민을 죽여.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 저 새끼가 누구의 아들인지 이제 모두 알았잖아. 네 동생을 죽였으니까 이강민 아들도 죽여야지. 그래야지 공평하지" 



  악마 같은 새끼. 총을 부여잡은 손이 떨렸다. 너의 얼굴을 살펴본다. 시선이 마주치자 시선을 피한다. 너는 내 어깨를 붙잡는다. 왜. 말을 해주지 않은 거예요. 말해주면 뭐가 달라져? 너는 주저앉는다. 모든 것을 깨달은 얼굴. 이석민이 이강민의 이들이라는 것이, 이강민이 권순영을 죽었다는 것이, 이강민을 죽인 것이 이도겸이라는 것이 이리저리 뒤섞인다. 머리가 어지럽다. 









"알고 있어. 모두 알고 있다고. 시발. 그 좆같은 관계 알고 있다고" 





 너는 총을 쏜다. 이리저리 난발하는 총알. 불규칙적이게 들려오는 총성. 몇 발은 보스 주위에 있던 남자에게 맞는다. 그들은 총을 쏘려하지만 이도겸은 그들을 저지한다. 그들은 총을 맞는 그들을 바라본다. 힘없이 쓰러져가는 남자들. 나무에 틀어박히는 총알들. 더 이상 총알이 나가지 않자 너는 끝내 총을 바닥에 내던진다. 봐봐, 못 죽이는 게 아니라 안 죽이는 거잖아. 보스는 내게 그렇게 내뱉는다. 





"죽여!!!" 




  누구한테 뱉는 말일까. 네가 나를 죽여? 내가 너를 죽여? 그들이 나를 죽여? 그들이 너를 죽여? 응? 응. 소리치는 목소리가. 혼란스럽다. 바다에 빠지고 싶었다. 심해에 가라앉고 싶어. 고막이 찢어질 것만 같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싶다. 귀를 틀어막는다. 





"죽여줘. 석민아" 





  입술을 끌어올리는 너. 여유 넘치는 목소리. 처음 만났던 것처럼 처연하게 웃던 너.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힘 없는 웃음을 내뱉던 너. 스스로를 낮췄던 너.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 같았던 너. 너는 금붕어 같았다. 어항에 틀어박힌 채 숨을 내쉬었다. 너는 어항 안에서 도망치고, 또 도망치고. 너를 바라보며 웃는 그들에게서 도망치고. 그들이 어항 벽을 손가락으로 두들긴다. 너는 놀라서 반대편으로 도망친다. 그들은 반대편에서 손가락으로 두들기고, 너는 다시 반대편으로 도망가고, 도망가고. 도망가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들이 너를 어항 밖으로 꺼내는 것을 막을 수 없어. 너는. 헐떡인다. 작은 몸뚱어리가 흔들리고, 지느러미가 힘겹게 허우적거린다.




 어떻게 해도 죽을 거야. 어떻게 해도 죽을 거라고. 시발. 시발. 시발. 시발. 너는 내 총을 가져간다. 느리게 흘러가는 장면들. 입술을 끌어올린다. 총구가 내 몸을 향한다. 네가 중얼거린다. 안녕. 고개를 흔든다. 아니야. 왜. 또다시.





총성이 울린다 





  네가 나를 총으로 쐈을 순간에 나는 너를 원망했고 
그 후 네가 네 머리통을 총으로 쐈을 땐 나는 너를 저주했다 





  죽어가는 네가 그를 비웃는다. 숨이 끊어지려는 상황에서 넌 어떠한 반발도 없다. 어떠한 말도 없다. 그저 오롯이 붉어진 채 누워서, 재미있어 죽겠다는 얼굴로, 지켜본다. 지나치게 현실감이 없어 네가 쓰러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본다. 네가 나를 총을 쏜 것도, 네가 너를 쏜 것도.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잖아. 고개를 숙여 총에 맞은 부근을 바라본다. 와이셔츠가 벌겋게 물들어가고 있는데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총에 맞았다면 이럴 수 없잖아. 근데. 시발.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너는 왜, 점점 무너지나. 이게 뭐야. 왜, 너는. 왜. 이어지지 않은 말들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이도겸이 다가온다. 나의 멱살을 잡는 그.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니야" 
"응" 
"아니야, 아니라고" 
"네가 이렇게 만들었어. 이도겸, 네가 이렇게 만들었어. 네가 호시를 죽게 한 거야. 네가. 네가, 어떻게" 




  그를 바닥으로 눕혔다. 주먹을 쥐어 이도겸의 뺨을 갈겼다. 힘이 빠져 자꾸만 스쳐 간다. 잠자코 맞는 그. 충격을 받은 듯 이도겸이 울부짖는다. 울고 싶은 것은 난데 왜 네가 울어. 죽고 싶은 것은 넌데 왜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어.




  이명이 들린다. 일어나려 하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나지 못한다. 쓰러져 있는 너에게로 기어간다. 피로 물든 너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줄곧 감춰두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네가 이겼어" 





   시발, 네가 이겼다고. 너의 총알은 급소를 비껴갔다. 의사는 내게 운이 좋다고 말했다. 조금만 더 오른쪽이었으면 즉사였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목숨 같은 걸 바라지 않은 사람에게 살아서 운이 좋다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나. 살아서 뭐해. 네가 죽었는데. 운이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일부로 급소를 피한 것인지. 너는 사람을 죽이지 않은 거지. 왜 나를 살려놓은 거야. 나 대신 살아, 하고 하기에는 삶의 의욕이 없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괴로움에 살고 있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는 욕망에 허우적거린다. 창문을 바라볼 때면 그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침대 근처에 놓여있는 서랍으로 손을 뻗어 서랍을 연다. 앞으로 밀려 나온 총. 총을 쥐여 잡자 손이 떨려왔다. 두려움보다는 해방감. 총구를 입안에 밀어 넣는다. 그냥 네가 보고 싶어졌다. 




"이석민"



  뱀이다. 내 앞에 나타나는, 내 아버지를 쏜 남자. 이도겸과 내통한 남자. 뱀 같은 남자. 아니 뱀. 



"이도겸을 죽여. 호시를 죽게 한 사람이잖아"
"좆까"




  뱀에게 총을 겨누자 뱀이 웃음을 짓는다. 왜. 내가 못 쏠 것 같아? 왜냐하면 너는 네 아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하잖아. 뱀이 말을 마치기 전에 총을 쏜다. 뱀이 툭, 하고 쓰러진다. 뱀이 서 있던 자리를 노려본다. 소음기를 끼지 않았으니 곧이어 의사와 간호사가 들이닥칠 것이다. 문을 열고, 눈앞에 있는 시체에 비명을 지를 것이다. 다급한 발걸음이 들린다. 이윽고 내 머리에 총을 겨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방아쇠를 당긴다. 비명이 귓전을 때린다. 멀어지는 웃음 속 네가 웃는 것도 같다.





_E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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