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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중단편

술래잡기 中





"보스는 당신이 배신했다는데"
"글쎄"
"왜 그랬어요"
"내가 보스에게 총을 겨눴거든. 이렇게"





  악마의 속삭임. 너는 근처에 있던 총을 잡는다. 총구가 들이 밀어진다. 새까만 구멍. 너는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듯 행동하고 있었다. 재킷에서 총을 꺼내 너를 겨눈다. 서로를 마주한 총



"총 놔요"




텅 빈 너의 눈이 일순간 형형히 빛났다.










술래잡기 中

W. 몬트 (@mond_soon)




  어둠 속에서 빛나는 너의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너의 눈을 마주하면 어떤 말을 내뱉을지 알지 못하였기에 그저 입을 다물었다. 시선을 아래로 돌리자 너의 맨발이 보였다. 찬 바닥에 맞닿아서인지 발가락 끝이 벌겋게 물든 발. 지금 걱정해야 하는 건 네가 아닌 나의 안위인데 나는 너를 걱정하고 있었다. 좆같이 상황파악 못 하는 병신. 나는 나를 욕하면서 자꾸만 너의 발을 쳐다보았다. 흐트러진 옷을, 위태롭게 매달린 총을. 너를 이룬 모든 것들은 내가 기피했고 멀어지자고 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너로 이루어진 것을 보자 모든 것이 흔들렸다. 이것은 모순이었다. 내가 기피했던 것들이 그저 너로 이루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순응하게 되었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너는 이를 드러낸 채 아이 같은 얼굴로 내게 웃는다. 너의 손에는 총이 매달려있다. 너는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 너는 내게 총을 겨눈다. 지독한 괴리감




  나를 향한 검은 구멍을 바라보자 끝없는 어둠으로 빠질 것 같았다. 정신이 아득해져 눈을 감았다. 그제야 너의 소문들을 깨달았다.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듣고 그저 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소문의 정의대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 전하여 들리는 말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사실이었다. 네가 단순히 몸을 파는 이가 아니라는 것이, 늘 상 풀려 있었던 동공이, 올라가 있는 입꼬리가, 시선을 돌리곤 했던 모습들이 거짓이라는 것이. 지금의 너는 보스의 오른팔이었으며 한 마리의 맹수였다. 너의 손에 들려 있는 무게에 배만큼 내 손의 들려있는 것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게 사슬이 되어 나를 옥죈다. 나는 그저 너를 찾고 싶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해 너를 부여잡고 울어버리고 싶었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보스의 말대로 너는 정녕 배신자인 거냐고. 그러나 네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두려워 입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대신 내뱉어지는 것은 너의 웃음. 그것만큼은 진실하여 너의 웃음에 부서져 내린다. 조각나 버린 내 몸을 어디에다 버려야 하나. 한참을 생각하다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안타까워했다. 초승달을 그려낸 너의 미소가 밤하늘에 떠오른다.




  문득 죽어버릴 것 같았다. 네가 나를 죽이는 대신 내가 나를 죽이고 싶었다. 변해버린 네가 안타까웠지만 너는 변하지 않았다. 단지 너는 발톱을 숨겼을 뿐이었다. 네가 배신을 했다는 얘기는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너를 죽일 수 없나. 그동안 봐왔던 모습들에? 빌어먹을 동정심에? 아무것도 상관없다는 눈빛에? 금방이라도 총구를 자신의 머리통으로 돌릴 것 같은 불안감에? 만약 그가 진짜 배신자라면? 그가 보여주었던 모든 것들이 다 연기라면? 그래서 그조차 연기라면? 드러난 복숭아뼈에서 튀어나온 잡념들은 꼬리를 물고 늘어난다. 점차 불어난 잡념들은 사람의 형태로 생겨난다. 정적이 흘렀다. 정적은 쉼 없이 흘러갔다. 쉼 없이 흘러가는 정적을 깬 것은 너의 웃음이었다. 너는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올라간 입은 점차 벌어지고 검은 동굴이 보이고 간헐적인 웃음소리가 들린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 얼굴을 가리고는 크게 웃는다. 웃는 너에게 다가간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발걸음. 너의 눈이 다시 형형히 빛난다.




  몸이 아래로 눕혀지고, 너는 내 위로 올라타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손에 매달린 총이 저 너머로 날아간다. 




  아, 당했다




"그렇게 순진해서 되겠어?"



  너의 입술이 비뚜름 올라갔다. 명백한 비웃음. 배신자를 쫓는 상황인 것을 암에도 그것을 실감하지 못했다. 사적인 감정은 배제한다는 그 기본적인 상식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의 안일함이 나를 죽이고야 말았다. 너는 총구를 내게 들이밀었다. 이마에 닿는 느낌이 생경하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다기보다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네가 처음에 총을 겨누었을 때만 해도 당혹과 분노로 잠식되었는데 막상 이런 상황이 오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정말, 이대로, 죽는 것, 인가. 네가 고개를 숙이자 너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린다. 너의 이마가 보였다. 너는 늘상 머리를 내리고 다녔기에 너의 이마를 본 적은 없었다. 나는 너의 얼굴을 온전히 새긴다. 눈썹도. 이마도. 눈도. 입술도. 너는 고개를 내린 채 속삭인다. 아가. 나는 너를 담는 것을 멈추었고 숨을 멈추었다. 아가, 야릇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아가. 머릿속을 뒤섞이는 단어를 내내 곱씹었다. 머릿속 생각들이 한순간에 백지가 되어버렸다. 너의 손이 점차 방아쇠를 당긴다. 마침내 방아쇠는 한계치에 다다랐다.




타ㅡ앙





  감았던 눈을 뜰 수 있었으니까 나는 살았음이 틀림없다. 손을 들어 이마 언저리를 만져보지만 어떤 아픔도 묻어나오지 않았다. 참았던 숨을 내뱉는다. 힘겹게 내뱉는 숨. 총 끄트머리에서 나온 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어 한참을 쳐다보았다. 금방이라도 죽일 듯이 총을 겨누었는데 그랬는데. 내 이마가 붉게 물들 줄 알았는데 그 붉은 것은 총 끝에 매달려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총에 매달려있는 것은 추욱 늘어진 채 선혈 대신 꽃 내음을 흘리고 있었다. 꽃다발이었다. 꽃다발. 상사화로 가득 찬 꽃다발. 내가 당신을 죽일 이유 없잖아. 꽃다발을 건네주며 네가 말했다. 일어나려 했으나 다리의 힘이 풀려 서지 못했다. 방금 태어난 송아지 같은 몸짓에 너는 웃는다. 어정쩡하게 몸을 일으키는 나를 보고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방안 좀 희뿌옇지 않아? 아니면 몸의 힘이 빠진다거나 정신이 몽롱하다거나 죽을 것같이 졸렵다거나. 이게 뭔 것 같아?  그냥 단지, 좀 자. 한 번에 잡히면 너무 재미없으니까 "




   너는 남겼던 술을 입안에 털어 넣는다. 수면제를 태웠노라고 진술하는 너. 졸음을 쫓아내려 하지만 한 번 온 잠은 쉬이 도망가지 않았다. 네가 흔들린다. 테이블을 짚자 천장과 바닥이 뒤집힌다. 너가 의자에 걸쳐진 재킷을 걸치고 나갈 때까지 나는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네가 완전히 나갔다. 바닥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검은색 천장. 네가 놓고 간 총을 들어 올리자 검은 하늘 위로 붉은 꽃이 만개한다. 얼굴 위로 툭, 하고 희멀건 것이 떨어진다. 직사각형으로 접힌 쪽지 하나. 조심스럽게 펴보자 한 단어가 적혀있었다. 연필로 눌러 쓴듯한 단어,





'안녕'




  총을 던졌다. 꽃이 이리저리 난발한다. 안녕. 안녕. 안녕. 안, 녕. 왜 이별인가. 왜 빌어먹을 이별인가. 아니다. 이것은 재회의 인사일 것이다. 만나서 반갑다는 재회의 인사. 그냥 그런 거 다 좆 까. 이별의 인사인지 재회의 인사인지 알 바 없어. 그냥 네가 총을 물고 외롭게 뒈져버릴 것 같아 서글펐다. 너에게는 죽음마저 장난일 것 같았다. 광대가 입가에 총을 문 것처럼 총을 입에 물고 수군거리는 관중을 보고 조작이라며 비웃는 그들을 보며 총을 쏠 것 같았다. 너의 뒤통수로 피가 흩날린다. 네가 주고 간 꽃다발같이






*






눈을 감았다 뜨면 네가 보였고
다시 눈을 감았다 뜨면 네가 없어졌다.





  처음에는 네가 준 꽃다발을 버리려 했다. 나를 엿맥인 네가 준 꽃다발을 뭐하러 간직하나 싶었는데 막상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리려 하니 처연하게 핀 꽃이 안타까웠다. 단지 그뿐이었다. 좆같아. 버리려해도 버려지지가, 않아. 꽃다발을 말리려다 너를 거꾸로 매달아버리는 것 같아 꽃병을 샀다. 처음 받아보는 꽃다발. 처음 길러보는 꽃. 그래서 그런가. 처음이라서 그런가. 물을 주고 창가 근처에 두었지만 꽃은 하루가 갈수록 자꾸만 시들어버렸다. 하루가 갈수록 자꾸만 지는 꽃다발이 꼭 남은 네 수명 같아 두려웠다. 보스가 너를 잡는 것을 나에게만 지시했을 리가 없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내게 배신자를 잡아 죽이라는 지시를 내릴 리가 없었다. 나는 그저 수많은 술래 중 하나였고 너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네가 눈에 밟히지만 너를 알지 못했다. 나는 다른 이들이 너를 아는 것보다 알지 못한다. 너를 만나지 못한 시간이 안타까워. 내가 없는 시간의 네가 궁금해.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너의 이름과 나이와 생일뿐인데. 보스가 준 서류를 다시 한 번 훑어내렸다. 거주지 불명, 신원불명. 천지에 아무것도 없는 너. 조직에서 나고 자란 너. 그런 너에게 조직은 집과도 같을 텐데. 내가 같이 도망치자 종용했을 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정도로 너는 그 굴레에 순응하고 있었을 텐데 네가 배신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이유를 찾아보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디부터가 진실이고 거짓인가.




  몸을 팔던 너도 총을 들었던 너도 전부 너인데.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하나. 침대에 누웠다.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창가에 놓인 꽃다발을 바라보았다. 빨간 꽃이길래 장미와 같은 꽃말을 가졌으리라 생각했다. 차라리 꽃말 같은 거 찾아보지 않았으면 좋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얼굴을 덮었다. 왜 도대체. 왜.





 핸드폰이 이불 위를 유영한다. 오른쪽으로 돌던 핸드폰은 이내 움직임을 멈춘다. 팔을 뻗어 잠금을 누른다. 화면 위로 문자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떴다. 애먼 낮에 잠이 올 리 만무했지만 이불을 덮었고 눈을 감았다. 귓가로 자동차 소리가 울려 퍼진다. 




  다시 눈을 뜬 건 짧은 바늘이 세 바퀴를 더 돈 후였다. 꺼진 핸드폰의 전원을 켜자 진동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부재중 전화가 있었고 문자도 꽤 있었다. 핸드폰을 들었다. 6시였다. 업데이트를 했다는 알림을 지우고 지우다 보니 이제 남은 알림은 부재중 전화가 왔다는 알림과 문자가 왔다는 알림이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스팸이라도 온 것인가. 그제야 느릿하게 온 문자를 확인했다. 발신인 불명의 문자. 'T:H Y공원' 티에이치. 티, 에이치. 입안에 까슬하게 남아 긁히는 단어를 곱씹었다. 탄식을 내뱉었다. 티,가 타겟이라는 것이, 에이치가 널 뜻하는 것이. 보스가 너를 죽이는데 나만 붙여준것이 아니었다. 너는 누가 쫓는지 알지도 못한 채 도망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몇 명이 있을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그들보다 너를 먼저 찾아야 한다는 것. 너를 찾고 무엇을 할지 모르겠지만 너를 죽게 할 수 없었다.




  문자가 올 때마다 숨을 죽였다. 네가 죽었다는 문자일까 봐. 그러나 온 것은 스팸이나 네가 나타났다는 문자였다. 멈추었던 숨을 내뱉었다. 너를 찾아 나서려고 옷을 입은 상태였으나 이불을 덮었다.






  평소랑 같은 날이었다. 새로운 소식을 받았고 나는 늘상 너보다 한발 늦었으며 너를 만난 날에도 너를 죽이지 못했다. 너를 죽이려 총을 들 때면 처연하게 웃던 네가 생각이나 끝내 쏘지 못하였다. 이것은 동정이었다. 고꾸라진 그의 삶이 불쌍해 생긴 동정. 그런데 그 동정이 나를 지옥으로 끌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알아차렸어야 하나. 술집, 놀이터, 공원을 맴돌았던 네가 뜬금없이 주차장을 향할 때? 뒤따르던 발걸음이 들렸을 때? 네가 나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을 때? 아무도 없이 혼자 약속장소로 나갔을 때?





  그저 담배 한 대를 피우며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담뱃재는 아스팔트 위로 떨어져 잿빛의 원을 그린다. 그것을 발로 뭉개자 틈 사이로 재들이 틀어박힌다. 재위로 검은 그림자가 덧대어진다.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길래 너인줄 알았는데 네가 아니었다.





검은 그림자가 날 덮쳐왔다.





  눈을 떴지만 보이는 건 없었다. 무언가가 두 눈을 동여매고 있었다. 어둠에 잠식된 것 같았다. 세게 묶은 탓인지 눈이 아파왔다. 모든 게 보이지 않았다. 죽음의 코앞에 도달한 것 같아 괜스레 불안해져 손을 뻗으려 하지만 손에 닿는 건 반대쪽 손밖에 없었다. 그때가 생각이나 숨이 거칠어졌다. 지독한 시간그런 것들이생각 이나. 종래에는 나의 아 버지가 생각 이나 나를 내려 다보던 그 눈빛. 한 번도 나를 쳐 다보지 않았 던 눈 빛. 그 런 것 들 이 목 을 죄 어 오 고 나 를 다 그 치 고. 이게 꿈이라면 지독한 악몽이다. 입안을 깨물어보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비릿한 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납치된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조직일을 하셨는데 그 때문인지 원한을 산 사람들이 많았다. 나를 납치했던 이들도 아버지에게 원한을 샀던 사람이었다. 그들은 나를 납치한 채 지하실에 가둬놓았다. 참을 수 없는 공포감이 밀려들어 왔다. 그들은 나에게 아버지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그들은 나를 구하러 아버지가 오면 뒤를 노릴 작전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게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 아버지에게 연락이 간 지 사흘이 지났지만 아무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어두운 지하실에서 몸이 묶인 채 구타를 당했다. 정신을 잃어갈 때 즈음 아버지의 비서가 나타났다. 비서의 어깨에 매달린 채 엉망이 된 나를 내려다보며 욕을 내뱉었던 아버지. 귀찮은 새끼, 비난하던 아버지.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다. 한 번 더 납치되면 그는 나를 구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버린 채 누군가를 끌어다 새 자식을 잉태시킬 것이다. 끝없이 몰려오는 혐오감에 아버지가 준 이름을 버리고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노래를 좋아해 가수가 되고 싶었다. 어두운 구석은 없는 가수. 그렇지만 나는 나의 아버지를 닮았다. 비딱한 자괴감, 만성적인 우울함, 존재하지 않는 죄책감. 그런 것들이 지독하게 아버지를 닮았다. 밝은 곳에 있으면 좀 다른줄 알았지만 나는 나의 아버지를 닮았다. 똑같은 눈을 하고 사람을 바라본다. 질리는 우울함이 비집고 흘러나온다. 나는 비참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 피는 어디 가지 않았다.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는 운명. 내가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 그때 아버지는 처음 웃으셨고 그 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같이 가자는 말. 평범하게 살자는 말. 너에게 뱉은 말은 나에게 향해있었다. 너를 보니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이, 부풀어 올랐다. 네가 도망쳐 펑하고 터져버린 욕망. 찢긴 조각을 주워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신경질적인 손이 안대를 벗겨냈다. 안대를 풀어주는 손에는 뱀이 그려져 있었다. 검은 뱀. 입을 벌린 채 사과를 물고 있는 뱀. 뱀은 손등으로부터 잉태해 어깨로 올라갔다. 목까지 이어진 뱀. 아버지의 목을 타고 올라오던 뱀. 머리가 새하얘졌다. 검은 뱀. 아버지의 목을 조르던 검은 뱀. 수갑을 풀으려 손을 바쁘게 움직여보지만 그는 이미 머리에 총구를 댄 후였다. 죽을 것이다. 아니 죽는다. 네가 내 머리에 총구를 가져다 댔을 때에도 죽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지금은 확신이었다. 나는 분명 죽고야 말 것이다. 아버지를 죽인 놈들이 나마저 죽일 것이다. 빌어먹을 관계.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가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했다. 그에 따라 방도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했다. 깜빡, 깜빡. 눈가가 떨렸다.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웃는다. 관자놀이에 총구가 닿는다. 손에 들린 리볼버




  한 번, 텁텁한 목가로 침을 삼켰다. 몸이 볼품없이 떨렸다.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탄창이 돌아간다. 두 번, 그가 읊조렸다. 수건 사이로 욕을 내뱉었다. 세 번, 그가 다시 한 번 읊조린다. 숨을 멈추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이곳에서 도망치려 하지만 몸을 옭아매는 밧줄 때문에 그조차 쉽지 않았다. 네 번, 그의 입술이 비뚤게 올라갔다. 제발, 살려주세요. 나도 내 아버지가 싫었어. 그 새끼를 죽이고 싶었다고. 나를 죽이지 말아줘. 제발, 살려, 주세요.




  남은 것은 2발. 반의 확률. 1과 0, 있느냐 없느냐. 어차피 그는 나를 죽여버릴 것이다. 단지 지금 죽냐 잠시 후에 죽냐에 차이. 1, 불이 켜졌고, 0, 불이 꺼졌다. 그는 리볼버의 방아쇠를 당긴다. 느리게 흘러가는 장면들. 깜박, 불이 꺼졌고 낡은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깜박, 꺼졌던 불이 다시 켜진다. 한 인영이 나타난다. 노란 머리. 붉은 가죽 재킷. 어린 몸. 욕을 내뱉는 입술. 피를 묻힌 얼굴. 이리저리 흔들리는 자락.




"이제 술래 교대야."
"어재서,"
"이석민, 도망가"




  몇 발의 총성이 더 울렸다. 꺼진 방안에서 섬광이 빛난다. 불이 다시 켜지자 그들은 모두 바닥으로 쓰러진 후였다. 끊길 듯 말듯 이어지는 조명은 이내 완전히 꺼진다. 발소리가 들린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 행여 그 발소리가 멀리 사라져버릴까 두려웠다. 손이 짧게 닿았다 떨어진다. 나를 묶었던 밧줄이 발 밑으로 떨어진다. 손이 풀리자마자 그를 잡으려 하지만 그가 손에 닿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지 마요, 제발. 왜 자꾸 나타났다 사라지는 거예요. 차라리 그럴 거면 영영 나타나지 말지. 그때 그런 눈빛, 행동, 말들을 하지 말지" 




불이 다시 켜졌을 때 방 안에 남아있는 것은 나, 하나였다. 




너를 볼때 면 하염없이 울고 싶었다






*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코와 입으로 들어차는 물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었다. 머리가 잡혀 올라가고 그제야 막혔던 숨을 내뱉었다. 똑바로 그를 쳐다보았다. 검은 뱀이 그려진 손등을, 나를 내려다보는 그 두 눈을.




"왜 그랬니"
"왜 제가 보낸 것처럼 문자 보낸 거에요? 세상천지 모르는 아인데" 
"왜 그 새끼 살려준 거니"
"왜 그랬냐고요"




  시이팔. 불안을 씹었다. 불안을 씹으면 그대로 없어질 줄 알았는데 부서진 불안은 찢겨진 채 내게 달라붙었다




"왜, 거길, 기어, 들어가. 그 새끼만 죽이면 얼마나 많은게 들어오는데. 너 그 새끼 누구 아들인지 알아? 이강민이야, 이강민. 네 부모님 죽여버리고 고아인 너 데려다 키운 새끼 아들이야. 이석민이가. 그 시발놈이 낳은 아들이 이석민이라고! 




  웃음을 터지듯 내뱉었다. 폐에 들어찬 물 때문인지 웃음을 내뱉을 때마다 폐가 당겨왔다. 이석민이 이강민의 아들이다. 이석민이 이강민의 아들이다. 이석, 민이. 이강민의 아들, 이다. 순영아. 어찌 해야 할까. 순영아. 너를 죽인 새끼의 아들이 버젓이 살아있는데 나는 어찌 해야 할까. 그 새끼를 살려줬는데. 응? 순영아. 아직도 네가 죽었던 날이 생경한데. 나를 평생을 사람도 못 죽이는 병신으로 살게 한 사람인데. 너는 나 대신 죽었으나 나는 너를 또다시 죽게 했다. 순영아. 그런데 나는 그 아이를 죽일 수 없었어. 그 아이가 죽는 걸 볼 수 없었어. 나는 그 아이를 살린 것을 후회하지 않아. 힘겹게 웃었다.





  다시 한 번 얼굴이 물에 처박힌다. 몰아치는 물에 숨을 들이켜지 못하고 온전히 받아내었다. 어쩌면 내 존재 자체가 불행이었는지도 모른다












3까지는 안가겠다고 여겼는데..... 3부작이 되었네요...
하하하하핳ㅎ...넣고 싶은 설정 다 넣어버렸더니...
ㅋㅋㅋㅋㅋ쿠ㅠㅠㅠㅜㅜㅜㅜㅜ망했읍니다 ㅣㅠㅠㅠ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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